1986년 4월 28일, 대한민국 서울, 서울대학교 앞 신림 사거리에서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던 20살의 청년 김세진 이재호 두 사람이 400여명의 학생들과 군사훈련인 전방입소 반대 시위를 벌이던 중 ‘반전반핵 양키고홈’ ‘북미 평화협정 체결’ ‘미 제국주의 축출’,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이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 구호였다. 한국사회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20년이 흘렀다. 세상은 변하였다. 남북의 정상이 만난다. 미국은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논의한다. 상상할 수도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 두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던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하고 있을까? 세상이 변한 것만큼 그들도 변했을까? 순응의 페르소나들! 부적응의 표정(얼굴)들!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이다.’ 그 진실에 관하여 친구들과 감독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위치를 바꾸며 증언한다.
연출의 변. "은 주제에서 전작들과 일맥상통한다.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증발한다. 그 공간이 라다크이고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의 증발에 대해 집착을 보이고 찾아 나선다. 그 사람을 만날 수도,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영화는 그런 과정을 바라보고 여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이 보는 풍경, 특히 고원의 정경을 그려낸다."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영화제 소개글. 홀연히 사라진 한 여인으로부터 K는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엽서 한 통을 받는다. K는 그녀와의 기억의 장소인 히말라야 고원의 한 마을 라다크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서 심한 고산병의 고통에 시달린다. 여인은 왜 사라졌을까, 왜 남자는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일까? 은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묵묵히 K가 바라보는 풍경과 그가 겪는 여행의 체험을 기록한다. 단순한 여행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K를 따라가는 여정은 토악질과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인간내면으로의 고통스런 탐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카메라는 K가 자동차에서 내려 고통 속에서 토악질을 한 후 사막과도 같은 풍경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묵묵히, 혹은 아주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주인공 K를 연기한 사람은 바로 감독 자신. 그는 픽션의 여행에서 자신이 예전에 이 곳을 찾았을 때 실제 찍었던 과거의 사진을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스스로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문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시간이 여전히 지속하면서 동시에 변화하고 있음을 엿보게 하며 그의 데뷔작 를 떠올리게 한다. 감독은 “지금 우리 마음은 사막처럼 황량하지만 이 여행이 끝날 때쯤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거다”라 말한다.(김성욱)
경남 남해군 물건리의 반농반어 마을에 사는 호방한 사나이, 배중달의 인생목표는 나이 50을 바라보는 늙디늙은 노총각 동생, 배중범이 장가 보내는 것과 새로이 시작한 타조농장사업의 번창이다. 이런, 중달의 타조 농장이 눈에 가시인 옆집 사는 조진봉은 배중달에게 있어 둘도 없는 앙숙이다. 진봉이 부숴버린 타조 울타리에 화가 난 중달은 오늘도 진봉과 한판 붙는다. 이때, 물건리에선 도통 찾아보기 힘든 자태곱고 단아한 노부인, 송인주가 불현듯 등장한다. 동네에서 점방을 하며 살고 있는 찬경과 건망증이 심한 그의 처. 자식과 아내를 모두 잃고, 나이보다 조숙한 11살의 손녀딸, 영희와 살고 있는 필국. 그리고 이들에게 처절하게 왕따를 당하는 진봉. 이들 앞에 불현 듯 나타난 송인주는 뭇사내들의 가슴을 첨벙첨벙 뛰게 만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