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40일간의 순례. 핵발전소와 송전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 일터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혐오와 배제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 한국 사회에 반복되어온 참사를 겪은 사람들, 군사기지와 전쟁 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순례단과 길동무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다른 세상을 위해 걸어간다.
Director
평생 용접공으로 살았던 성희가 프레스를 다루던 중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잠이 줄고 몸은 메말라간다. 이렇게 살 바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무섭게 밀려온다. 130일 동안 노숙 농성을 이어왔던 수영이 ‘같이 좀 살자!’며 절규한다. 무너진 마을을 절뚝절뚝 걸으며 씁쓸히 웃던 수영이 공동체를 지켜달라는 편지를 남기고 하늘 감옥인 망루에 오른다.
Director
16년동안 송전탑반대싸움을 하고 있는 주민의 얼굴과 딛고 있는 땅을 바라본다.
Director
부산의 어느 좁은 골목 끝에는 작은 극장이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다. 극장의 빛을 기록하고 영화를 상영해온 이들의 하루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조용히 흘러간다. 10년간 지켜온 극장의 마지막 날을 앞둔 이들의 얼굴엔 피로가 내려앉았다. 소중한 공간과의 이별을 앞두고 영화는 이 곳과 사정이 다르지 않은 극장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Director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 소성리. 별이 지고 해가 뜨면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된다. 마을 귀퉁이 다니는 곳곳마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금연, ‘8부녀 회원들’과 재미난 일을 꾸리는 순분, 바지런한 몸으로 새벽부터 흙으로 향하는 의선 또한 느릿한 하루를 맞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소한 일상이 평화인지도 몰랐던 마을에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하고 낯선 물체가 들어오면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Writer
할머니 댁이 있는 기프실 마을이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변해가고 있다. 10가구 남짓 남은 기프실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은 기한 없이 미뤄지는 이주를 앞두고도 뜯겨난 땅에 또다시 삶을 일구고, 떠나가는 이웃을 배웅하며 함께 생활한다. 나는 그분들과 섞여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는 기프실의 모습과 황폐해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검은 물속으로 잠기는 마을과 마음을 보며 내 안에 숨겨둔 기억을 꺼낸다.
Producer
할머니 댁이 있는 기프실 마을이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변해가고 있다. 10가구 남짓 남은 기프실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은 기한 없이 미뤄지는 이주를 앞두고도 뜯겨난 땅에 또다시 삶을 일구고, 떠나가는 이웃을 배웅하며 함께 생활한다. 나는 그분들과 섞여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는 기프실의 모습과 황폐해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검은 물속으로 잠기는 마을과 마음을 보며 내 안에 숨겨둔 기억을 꺼낸다.
Editor
할머니 댁이 있는 기프실 마을이 4대강 사업의 일환인 영주댐 건설로 변해가고 있다. 10가구 남짓 남은 기프실은 마치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듯하다. 마을 주민들은 기한 없이 미뤄지는 이주를 앞두고도 뜯겨난 땅에 또다시 삶을 일구고, 떠나가는 이웃을 배웅하며 함께 생활한다. 나는 그분들과 섞여 하루가 다르게 비어 가는 기프실의 모습과 황폐해져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검은 물속으로 잠기는 마을과 마음을 보며 내 안에 숨겨둔 기억을 꺼낸다.
Director
4, April, 2014. Worker's who worked in "SaengTak" are get to the struggle to require adjust of working environment for safely food, and guarantied a Three Right of labors. Then. Worker's tried to record there's own struggle and launch forth to street, However, Law, Capital, unconcern of crowd and avoid of famille are swallow up them.
Editor
우리 밭 옆에 765인가 뭔가 송전탑을 세운다케서 농사꾼이 농사도 내팽겨치고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어예. 그거 들어오면 평생 일궈온 고향땅 잃고, 나도 모르게 병이 온다카데예. 동네 어르신들이랑 합심해가 정말 열심히 싸웠는데 3천명이 넘는 경찰들이 쳐들어와가 우리 마을을 전쟁터로 만들어 놨었습니더. 산길, 농로길 다 막고 즈그 세상인 냥 헤집고 다니는데 속에 울화병이 다 왔어예. 경찰들 때문에 공사현장에도 못 올라가보고, 발악을 해봐도 저놈의 철탑 막을 길이 없네예. 아이고 할말이 참 많은데 한번 들어보실랍니꺼.
Director
우리 밭 옆에 765인가 뭔가 송전탑을 세운다케서 농사꾼이 농사도 내팽겨치고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어예. 그거 들어오면 평생 일궈온 고향땅 잃고, 나도 모르게 병이 온다카데예. 동네 어르신들이랑 합심해가 정말 열심히 싸웠는데 3천명이 넘는 경찰들이 쳐들어와가 우리 마을을 전쟁터로 만들어 놨었습니더. 산길, 농로길 다 막고 즈그 세상인 냥 헤집고 다니는데 속에 울화병이 다 왔어예. 경찰들 때문에 공사현장에도 못 올라가보고, 발악을 해봐도 저놈의 철탑 막을 길이 없네예. 아이고 할말이 참 많은데 한번 들어보실랍니꺼.
Director
내가 사는 곳은 햇빛이 가득 넘치는 마을 밀양입니더. 지는 10년 전에 농사짓는 게 너무 힘들어가 좀 쉴라고 공기 좋고 물 맑은 밀양에 터 잡았어예. 근데 요즘 내 생활이 많이 서글퍼예. 우리 마을에 765인가 뭐신가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난리데. 그거 때메 8년을 싸웠어예! 얘기하자면 긴데 한번 들어 보실랍니꺼?!
Director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재년(애칭 제제)과 우영(애칭 노인네). 띠동갑 나이차를 극복하고 만남을 시작한 지 어언 8년. 이젠, 그녀를 바래다 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벗어 던지고, 그를 배웅해야 하는 아쉬운 헤어짐을 끝내고 싶다! 그러나, 미처 몰랐다.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내가 다 책임질게. 오빠만 믿으라’는 우영의 프로포즈가 거듭될수록 제제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험한 세상에 덜컥 둘만 남겨진 기분. ‘남편과 아내’로 규정되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져만 갔고,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은 공포로 다가왔다. 과연, 제제와 우영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을까?
Editor
SNS와 희망버스는 2011년, 새로운 운동에 물꼬를 텄다. 공고하고 일방적이던 언론을 균열내었고, 오만하던 정치권과 재계에 각성을 요구했다. 높다란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휴대전화와 사다리로) 넘어섰으며, 차벽에 가로막힌 영도 봉래교차로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밤을 지샜고 청학수변공원에서는 집회가 축제가 되는 순간도 맞이했다. 소위 조직된 운동권과 조직되지 않던 일반 시민들의 접점이었으며 익명성의 축제가 통성명을 전제로 하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희망버스는 점차 진화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거대한 난장판이 되었다. 다시, 제자리에 선 희망버스. 과연 어떻게 진화할까.
Director of Photography
SNS와 희망버스는 2011년, 새로운 운동에 물꼬를 텄다. 공고하고 일방적이던 언론을 균열내었고, 오만하던 정치권과 재계에 각성을 요구했다. 높다란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휴대전화와 사다리로) 넘어섰으며, 차벽에 가로막힌 영도 봉래교차로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밤을 지샜고 청학수변공원에서는 집회가 축제가 되는 순간도 맞이했다. 소위 조직된 운동권과 조직되지 않던 일반 시민들의 접점이었으며 익명성의 축제가 통성명을 전제로 하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희망버스는 점차 진화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거대한 난장판이 되었다. 다시, 제자리에 선 희망버스. 과연 어떻게 진화할까.
Writer
SNS와 희망버스는 2011년, 새로운 운동에 물꼬를 텄다. 공고하고 일방적이던 언론을 균열내었고, 오만하던 정치권과 재계에 각성을 요구했다. 높다란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휴대전화와 사다리로) 넘어섰으며, 차벽에 가로막힌 영도 봉래교차로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밤을 지샜고 청학수변공원에서는 집회가 축제가 되는 순간도 맞이했다. 소위 조직된 운동권과 조직되지 않던 일반 시민들의 접점이었으며 익명성의 축제가 통성명을 전제로 하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다. 희망버스는 점차 진화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거대한 난장판이 되었다. 다시, 제자리에 선 희망버스. 과연 어떻게 진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