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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어느 봄날, 광주 주강변 영국대사관 앞에 교수대가 세워지고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광장에 몰려든 수만여 백성들과 영국 상인들. 바로 청조 도광제(소민 분)의 특명 하에 조정대신 임칙서의 아편 금지령에 따라 아편판매상들을 처벌 하는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이 크게 유행했고, 공직자들은 영국 상인들의 아편밀수를 눈감아주는 대신 거액의 뇌물을 챙기고, 중국인들은 아편을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임칙서는 아편 근절의 강력한 정책의 일환으로 아편상들에게서 아편을 전부 몰수하기에 이른다. 1839년 6월, 임칙서는 거둬들인 2만여 개의 아편 상자를 호문에서 모두 소각시킨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정부차원에서 마약을 금지하는 처분이었다. 이에 분노한 중국에 주둔해 있던 영국인들은 청정부가 영국 정부의 재산을 없앤다는 이유로 영국정부에 출병을 요청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후원아래 영국의회는 271표 대 262표의 미세한 차이로 중국 침략 허가서를 승인한다. 해상강국 영국함대는 중국 근해를 거쳐 북경까지 들어오게 된다. 사건이 이렇게 되자 임칙서는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모함을 받게 되고 도광제는 그의 관직을 박탈, 대신 기선(임연곤 분)을 사령으로 임명하게 된다. 영국 군함과 대포를 본 기선은 중국이 패할 것이라 생각해 영국과 협상하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