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barman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은 마르셀 까르네, 장 르노와르, 줄리앙 뒤비비에, 자끄 페데르 등과 더불어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 영화 흐름의 대표적인 감독이었다. 사실적이면서 연극적이고 아방가르드 무성영화의 전통 속에 놓여 있던 그의 작품들은 초기 영화사에 있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2차 대전 시기 미국에서의 활동,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의 복귀 등을 거치며 그의 작품세계는 좀 더 확장된다. 그의 유작인 은 시종일관 팽팽하게 진행되는 사이코 스릴러 영화다. 아방가르드 성향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여전한 가운데, 중심인물들 사이를 오가는 밀도감과 세밀한 묘사는 뒤비비에 감독의 원숙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스릴러 장르의 구도 아래에서 그가 후기 이후 큰 관심을 가져왔던 인간의 원초적인 악마성이 작품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프랑스 식민지 인도차이나에서 얼마 전 돌아온 죠르쥬 캉포는 교통사고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진 뒤 그의 대저택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그는 부인 크리스티안도, 주치의인 프레데릭 로네도, 인도차이나에서 데려온 하인 키엠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들 모두 그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정신 상태는 호전되기는 커녕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하루 하루가 감옥에서 보내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전화 사용은 금지되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있고, 부인 크리스티안은 지금은 병의 완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그와 잠자리를 하기를 거부한다. 게다가 그의 대저택을 지키는 개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납게 으르렁 대기만 한다. 최근 그에게 일어난 몇몇 아찔한 사건에서 가까스로 화를 모면하긴 하였으나 모두 우연치고는 어딘지 수상하다. 밤이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어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의 머리 속 한 귀퉁이에서는 피에르 라그랑쥬라는 이름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억들이 떠올라 하염없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