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Dong-won
출생 : 1955-02-24,
약력
KIM Dong-won is like a godfather to Korean documentaries. As the leader of [PURN Production], a documentary production house that focused on unearthing the contradictions of Korean society from a progressive viewpoint. Purporting to make “good,” rather than “fun” movies, his camera zoomed straight in on the dark corners of the society, places full of contradictions, and refuges of the socially disadvantaged. KIM’s works provided textbook examples to Korea’s documentary directors that followed in his footsteps. His debut movie, < Sangye-dong Olympics >(1987), deals with people of Sangye-dong, an area of Seoul that was torn down by the government only because the area was “not easy on eyes” in the years leading up to the Seoul Olympics of 1988. In < Repatriation >(2004), arguably his best work, KIM Dong-won’s camera followed in breathing distance the lives of unconverted long-term pro-North Korea prisoners in South Korean jails. Devoid of any traces of exaggeration or direction, < Repatriation > shows the power of a documentary by capturing the essence of the subjects through long and candid takes.
Director
2000년 남북화해시대를 맞아 63명의 간첩 출신 장기수가 북으로 송환됐으나, 전향 장기수들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2001년 이들은 ‘전향무효선언’을 하고 2차 송환 운동을 전개한다. 좌우 대립이 심각한 남한 사회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전향 장기수들의 희망과 절망, 30년간 그들을 지켜본 감독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휴먼 스토리.
Director
가난했기에 우린 친구가 되었다. 1988년의 나(감독)는 헝클어진 머리, 볼품없는 옷을 입은 한 신부를 만났다. 매일같이 커피, 담배, 술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늘은 또 무슨 장난을 칠까 궁리했던 개구쟁이, 노란 잠바를 입고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멋들어지게 불렀던 ‘파란 눈의 신부’는 그렇게 우리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가난뱅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믿음으로 모든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었던 故 정일우 신부는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랑을 나누며 예수의 삶을 몸소 실천했던 ‘진짜’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을 바꿀 가장 맑은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Director
, 등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 온 김동원 감독이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적 고증을 담은 다큐멘터리.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위안부가 존재했고, 어린 나이에 여러 명의 군인에게 지속적으로 강간당했던 이들은 끔찍한 기억을 봉인한 채 63년을 살아왔다. 한국,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 각지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터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Director
2003년 12월 9일 새벽. 서울 혜화동 거리에서 중국동포 김원섭씨가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된다. 1년 뒤 같은 날. 카메라는 어딘가에 남아있을지도 모를 그의 흔적을 쫓아 종로와 혜화동 일대를 헤맨다. 밀린 임금을 받으러 갔다 돌아오던 김원섭씨는 한겨울밤, 지척인 농성장(당시 그는 재외동포법 개정과 강제추방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었다)을 찾지 못하고, 밤새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119와 112에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구조의 손길은 닿지 않는다.
Director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다섯 명의 감독이 참여했다. 탈북 청소년, 장애인, 비정규직, 중국동포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일상화된 차별문제를 다뤘다. 장애인 소녀가 직접 출연하여 그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주거나, 이미 죽고 없는 주인공을 대신한 카메라가 이야기를 쫓아가거나, 가해자의 의식을 들추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인권과 차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작가의 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드높이고자 기획됐다.
Screenplay
1992년 봄, 나(김동원)은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내가 살던 동네인 봉천동에 데려오는 일을 부탁받는다. 나는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사실에 낯설음과 호기심을 갖고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난, 특히 정이 많은 조창손과 가까워지고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모습에 정을 느끼는 한편 야유회에서 거침없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여전한 거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얼마 후 조창손은 고문에 못 이겨 먼저 전향한 동료 진태윤, 김영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전향자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자괴감이 깊게 배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난 이들의 송환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기수들의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입국 절차가 무산되고 되려 허가 없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데, 대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나의 친밀감은 두터워지게 된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송환 운동이 시작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송환 운동은 급물살을 탄다. 송환이 현실이 되자 남쪽이 고향인 장기수들, 옥중에서 전향을 하여 북으로 갈 요건이 안 되는 이들,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빚어진다. 송환을 앞두고 조창손은 30년 전 체포되었던 울산을 찾아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래고 그의 가족에게 전해 줄 흙 한 줌을 퍼 간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 이제는 자료 화면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 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고, 오랜 고문에 쇠하고 연세도 많은 그들 또한 더 이상 남측과 교류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Director
1992년 봄, 나(김동원)은 출소 후 갈 곳이 없던 비전향장기수 조창손, 김석형을 내가 살던 동네인 봉천동에 데려오는 일을 부탁받는다. 나는 그들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이라는 사실에 낯설음과 호기심을 갖고 첫 대면을 하게 된다. 한 동네에 살면서 난, 특히 정이 많은 조창손과 가까워지고 이들의 일상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들을 손자처럼 귀여워하는 모습에 정을 느끼는 한편 야유회에서 거침없이 ‘김일성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선 여전한 거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얼마 후 조창손은 고문에 못 이겨 먼저 전향한 동료 진태윤, 김영식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 전향자들에게는 떳떳치 못한 자괴감이 깊게 배어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난 이들의 송환 운동에 도움이 되고자 장기수들의 북쪽 가족을 촬영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입국 절차가 무산되고 되려 허가 없이 영화 제작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데, 대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기수 할아버지들과 나의 친밀감은 두터워지게 된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송환 운동이 시작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송환 운동은 급물살을 탄다. 송환이 현실이 되자 남쪽이 고향인 장기수들, 옥중에서 전향을 하여 북으로 갈 요건이 안 되는 이들,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빚어진다. 송환을 앞두고 조창손은 30년 전 체포되었던 울산을 찾아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래고 그의 가족에게 전해 줄 흙 한 줌을 퍼 간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 이제는 자료 화면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그들. 나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그들을 만나러 갈 수 없고, 오랜 고문에 쇠하고 연세도 많은 그들 또한 더 이상 남측과 교류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Director
아이들이 쉽게 빠져드는 비디오 게임은 교육적으로 역효과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골칫거리. 하지만 "철권가족"에서는 일가족 다섯 명의 대화를 매개해주고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려주는 가족 청량제다. 가족 구성원들이 철권을 즐기거나 허락한 다양한 동기들이 소개되면서 결국 온 가족이 즐기는 "철권"이 되었고 가족은 "철권"으로 하나되었다.
Director
서로베르토 신부는 한국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많은 외국 선교사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1964년 29세의 나이에 한국에 와서 2000년 7월 65세를 일기로 작고하실 때까지 그는 가난과 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주변에서 철저히 민중들과 함께 했다. 작품은 풍부한 학식과 가난을 실천하는 그의 정신 그리고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과 함께 알콜중독이라는 개인적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그의 일생을 담았다
Director
부당한 철거에 맞섰던 행당동 주민들의 투쟁과 공동체에의 꿈을 담았던 의 후속 작품. 행당동 철거민들은 3년여의 철거투쟁을 승리로 끝내고 95년 말 임시주거시설에 안착했다. 그들은 가난을 딛고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생산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운동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건설해나가고 있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행당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대안적 삶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과 희망을 제시한다
Director
This is a documentary about 6 days of struggle at Myong-dong cathedral, which triggered the struggle of the June 1987. In the night of 10th June the protest group was chased by the police, came into the Myong-dong cathedral by accident. Their conflicts and hope, political situations of the time are seen in the film with various sources and witnesses. This film seeks hope for today while showing critical reinterpretation on the struggle of the June 1987.
Director
The Father Moon Ik-hwan had been imprisoned for inaugurating the National Security Law after visiting North Korea. However Korean people’s desire for reunification heated up the whole country and Moon Gyu-hyeon and Lim Su-Gyeong visited North Korea. That means Father Moon’s visit to North Korea triggered Korean people’s desire for reunification. This film represents the Father Moon’s point of view on and people’s movement on reunification through influence of his visit in North Korea in 1989.
Director
This film shows that ‘how mass media dominates our daily life’ in a mixed format of drama and documentary. Part 1 is a drama represents the process of a human life from the childhood when the person first encounters with TV to how TV dominates him while growing up. Part 2 is a documentary of a group of people who banned from TV for a month. This experiment makes us think about what TV means to our life.
Director
The happy lives of Haengdang-dong residents are overturned when their land is slated for redevelopment.
Director
When it was decided that the 88 Olympics would be held in Seoul, the residents of Sanggye-dong were forced from their homes and they struggled against the government to at least guarantee them new residences.
Director
1990년에 발생한 도시빈민의 자살을 토대로 왜 도시빈민들이 형성되었는지,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왜 20명이 넘는 이들이 한 번에 자살했는지 차분하게 설명한다.
Director
카톨릭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김동원 감독의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