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Seung-jun

Yi Seung-jun

출생 : 1971-05-15, South Korea

프로필 사진

Yi Seung-jun

참여 작품

그대가 조국
Director
검찰의 칼날이 그대에게 향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사냥이 시작됐다. 검찰이 던진 좌표를 따라 언론은 몰려들고 소문은 꼬리를 문다. 분노한 대중 앞에 검찰은 칼을 휘두른다. 저기 쫓기는 자는 누구인가. 그대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림자꽃
Director
평양에 살던 김련희는 중국에 사는 친척집에 머물던 중 탈북브로커에게 속아 남한에 오게 됐다.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7년 넘게 노력해왔지만 격변하는 남북관계 속에서 그 희망은 아득해지기만 한다. 남한에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평양의 가족들에게 그녀의 빈자리는 점점 깊어만지고, 련희는 이제 그림자처럼 기억에만 남는 존재가 될까 두려워진다.
크로싱 비욘드
Writer
스포츠의 가치는 경쟁이 아니며 올림픽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는 순간 꽃이 핀다. 이 영화는 국적과 인종, 성별, 종교, 그리고 지역적 한계를 넘으려는 다양한 선수들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꽃을 피우는 순간으로서의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이다.
크로싱 비욘드
Director
스포츠의 가치는 경쟁이 아니며 올림픽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다.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는 순간 꽃이 핀다. 이 영화는 국적과 인종, 성별, 종교, 그리고 지역적 한계를 넘으려는 다양한 선수들이 장벽을 무너뜨리고 꽃을 피우는 순간으로서의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재의 기억
Director of Photography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현장에 고스란히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이다. 국가의 구조 책임자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앞에 있으면서도 구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에 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304명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실을 드러낸다.
부재의 기억
Editor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현장에 고스란히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이다. 국가의 구조 책임자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앞에 있으면서도 구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에 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304명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실을 드러낸다.
부재의 기억
Producer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현장에 고스란히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이다. 국가의 구조 책임자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앞에 있으면서도 구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에 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304명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실을 드러낸다.
부재의 기억
Director
당시 현장의 영상과 통화 기록을 중심으로 2014년 4월 16일 그 날의 현장에 고스란히 집중하며 국가의 부재에 질문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이다. 국가의 구조 책임자들이 기울어진 세월호 앞에 있으면서도 구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에 구하지 않음으로 인해 304명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실을 드러낸다.
달에 부는 바람
Editor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살아온 예지는 단 한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예지의 평생을 함께해 온 엄마지만 성질 부리며 머리를 박고, 때리고, 발 쾅쾅 구르는 예지의 행동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빛나는 순간을 느낀다.
달에 부는 바람
Director of Photography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살아온 예지는 단 한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예지의 평생을 함께해 온 엄마지만 성질 부리며 머리를 박고, 때리고, 발 쾅쾅 구르는 예지의 행동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빛나는 순간을 느낀다.
달에 부는 바람
Writer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살아온 예지는 단 한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예지의 평생을 함께해 온 엄마지만 성질 부리며 머리를 박고, 때리고, 발 쾅쾅 구르는 예지의 행동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빛나는 순간을 느낀다.
달에 부는 바람
Director
태어날 때부터 시청각 중복 장애를 안고 살아온 예지는 단 한번도 무엇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예지의 평생을 함께해 온 엄마지만 성질 부리며 머리를 박고, 때리고, 발 쾅쾅 구르는 예지의 행동들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빛나는 순간을 느낀다.
달팽이의 별
Director of Photography
주인공 영찬은 아주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잃기 시작,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온통 소음뿐인 상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고 단절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호'라고 불리는 한 여자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키가 아주 작고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영찬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하고, 아주 외로웠던 이 달팽이는 눈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고, 그 만의 언어로 수필과 시를 쓰는가 하면 연극 대본을 써서 아내로 하여금 연출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영찬, 그러나 그에게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것은 있다. 바로 그의 통역자이자 안내인인 아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한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순호 없이는 영찬이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행 훈련. 어느날 영찬은 아내 없이 혼자 사회복지관 차를 타고 보행훈련을 받으러 간다. 바닷속에서 수영을 하는 영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무리를 짓는다.
달팽이의 별
Director
주인공 영찬은 아주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잃기 시작, 지금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리는 것은 온통 소음뿐인 상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달팽이'라고 부르곤 한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려면 마치 달팽이처럼 촉각에 의존해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고 단절돼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순호'라고 불리는 한 여자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키가 아주 작고 척추 장애를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영찬의 삶을 바꾸어 놓게 된다. 그녀와 결혼한 그는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것들을 갈구하기 시작하고, 아주 외로웠던 이 달팽이는 눈썰매를 타고, 수영을 하고, 그 만의 언어로 수필과 시를 쓰는가 하면 연극 대본을 써서 아내로 하여금 연출하게 하기도 한다. 이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영찬, 그러나 그에게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할 것은 있다. 바로 그의 통역자이자 안내인인 아내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는 것. 어느 날 한 사회복지관에서 만난 시각 장애인을 통해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사실과 순호 없이는 영찬이 쉽게 다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행 훈련. 어느날 영찬은 아내 없이 혼자 사회복지관 차를 타고 보행훈련을 받으러 간다. 바닷속에서 수영을 하는 영찬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마무리를 짓는다.
신의 아이들
Director
네팔의 퍼슈퍼띠낫에 있는 성스러운 강 바그머띠를 따라 그려지는 아름답고도 기이한 풍경, 그리고 삶과 죽음의 공존.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화장하는 동안 아이들은 장례식장에서 떠내려오는 돈과 음식을 얻으려 강에 뛰어든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여인들이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 영화제 소개글. 생명붙이들에 대한 깊은 안쓰러움과 삶에 대한 성찰. 마음이 싸해지는 작품이다.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 퍼슈퍼띠낫의 바그머띠 강가 화장터를 배경으로, 타인의 죽음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은 죽은 이를 화장하는 강가에서 헤엄을 치고, 곡을 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죽은 이들이 남긴 옷가지와 저승 노잣돈을 주워 생계를 이어간다. 작품은 술주정뱅이 엄마와 본드에 절어 사는 형, 4살배기 여동생과 사는 12살 엘레스를 통해, 우리가 함께 발 딛고 있는 이 지구 어딘가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일상에 섬세하고 정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제3세계 어린이의 삶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렇게 고단하다고 소리쳐 말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일상을 한 발짝 떨어져 보여주는 것만으로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크게 울린다.